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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사라지는 섬 - 일본 훗카이도 오쿠시리정

by 마음먹끼 2025. 5. 19.

오쿠시리정(奥尻町)은 일본 훗카이도 남서부에 위치한 오쿠시리섬 전체를 관할하는 작은 지자체로, 지난 30년간 급격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오늘은 일본의 인구소멸 도시 훗카이도 오쿠시리정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나베츠루이와
나베츠루이와

 

 

1. 일본 인구소멸의 현주소, 그 중심에 선 오쿠시리정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로, 2024년 기준 전체 인구는 약 1억 2,000만 명에서 계속 감소 추세에 있습니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와 도서지역의 인구 감소는 ‘소멸 가능성 도시(消滅可能性都市)’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멸 가능성 도시 중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훗카이도 남서단에 위치한 오쿠시리정(奥尻町)입니다.

 

이 지역은 훗카이도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오쿠시리섬 전체를 관할하는 행정구역으로, 일본해에 접해 있어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섬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경관과는 다르게, 이 지역은 일본 지방소멸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과거 1993년의 대지진과 쓰나미 이후 지속된 이주 및 출산율 저하로 인해 1995년 약 4,000명이던 인구가 2025년에는 약 1,200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이는 30년 만에 인구가 약 70% 이상 감소한 수치로, 자연 감소와 사회적 유출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쿠시리정만의 문제가 아닌, 일본 전역의 도서 및 벽지 지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쿠시리는 특히 고립성과 자연재해의 트라우마, 청년층 이탈의 복합적인 요인이 결합되면서 인구 감소가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2. 인구는 줄고 고령자는 늘고… 오쿠시리정이 직면한 현실

 

현재 오쿠시리정의 인구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본 전국의 평균 고령화율이 29%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오쿠시리정은 사실상 초고령사회를 넘어선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령화는 일상생활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유지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학생 수 감소로 인해 학교는 통폐합되고, 상점과 병원은 운영을 지속하기 어려워 문을 닫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주민이 외지로 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쿠시리 고등학교의 경우 한때 폐교 위기에 처했다가 지역 주민들의 서명운동과 지자체의 지원으로 가까스로 존속된 사례도 있습니다.

 

또한, 지역 기반산업인 어업과 관광업도 후계자 부족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의 정착이 없으니 지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고, 이는 다시 지역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오쿠시리정은 귀촌·귀농 장려금 지급, 공공임대주택 제공, 원거리 의료 지원 등 다양한 인구 유지 정책을 시행 중이나, 외지인의 실제 이주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이주해 오기엔 생계, 교육, 교통, 의료 등 모든 면에서 도시 대비 불리한 조건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 ‘소멸’을 넘어 ‘재구성’으로: 오쿠시리정의 생존 실험

 

그렇다면 오쿠시리정은 단순히 인구 소멸을 기다리고만 있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소멸’이라는 말 대신 ‘축소 사회 속에서의 재구성’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고 있으며, 오쿠시리정도 그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첫째, 관광 자원의 재발굴과 디지털화를 통해 외부 접근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역의 풍부한 해산물과 특색 있는 풍경을 소개하는 다국어 웹사이트 개설, VR 콘텐츠 제작 등은 방문객 유입을 노린 전략입니다.

 

둘째, 원격 근무 기반의 디지털 노마드 유치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격 근무가 보편화되면서 일본 전역에서 도서지역으로의 거주 이전 수요가 소폭 증가했으며, 이에 발맞춰 오쿠시리정은 일부 공공건물을 개조해 코워킹 스페이스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셋째, 지역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지역 정착 프로그램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쿠시리 고등학교는 교육 커리큘럼에 ‘지역창생’ 과목을 도입하고, 지역 기업과 연계한 직업체험 및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이는 단순히 교육 기능을 넘어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으로서 학교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이외에도 ‘소규모 다기능 커뮤니티’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병원·상점·공공서비스를 한데 모은 복합 커뮤니티센터를 운영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의 서비스 효율화를 위해 고안된 새로운 모델로, 향후 일본 내 다른 지역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구는 줄어들고 있지만, 오쿠시리정은 여전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는 단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줄어드는 사회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삶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실험입니다.

 

이곳은 더 이상 과거의 활기를 되살리기 위한 도시가 아니라, 미래의 새로운 지역 모델을 모색하는 섬입니다.

 

고령화와 공동체의 해체, 경제 기반의 약화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지방소멸’이라는 개념에 맞서 축소 속의 재구성을 모색하는 노력은 분명히 평가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디지털 전환, 외부 협력, 지역 자원의 재해석 등 오쿠시리정이 추진하는 시도들은 일본 내 다른 도서 지역은 물론, 인구 감소를 겪는 세계 여러 지방 도시들에도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삶이 남아 있다면, 그곳은 여전히 시작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 사회도 더 이상 ‘줄어드는 것=끝’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작아지는 만큼 단단해지고, 비우는 만큼 채워지는 지역의 가능성.

 

오쿠시리정은 지금,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방의 미래, 축소 이후의 삶에 대해 우리가 지금부터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